크론병·궤양성 대장염 등 만성 장 질환 환자에서 장이 딱딱하게 굳고 좁아지는 '장 섬유화'는 단순한 염증 반응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에 따르면 장 내 소화액의 흐름 등 물리적 자극 역시 섬유화를 유발하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현중 미국 클리블랜드클리닉 연구팀은 인체 환경을 그대로 모사한 초소형 실험 장치인 '장기 칩(Gut-on-a-chip)'을 이용해 건강한 사람의 장 세포와 중증 궤양성 대장염 환자의 장 세포를 비교 분석해 이 같은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는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던 난치성 장 섬유화의 초기 진행 과정을 '물리적 자극'과 '보호막 손상'이라는 새로운 시각에서 규명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연구팀은 장기 칩 안에 소화액이 흐르는 자극과 장이 수축·이완하는 움직임을 인위적으로 만들어냈다. 이후 장의 안쪽 벽을 덮고 있는 점막 보호막이 온전한 경우와 손상된 경우로 나눠, 물리적 자극이 세포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세밀하게 비교했다.
실험 결과 건강한 사람의 장 세포와 궤양성 대장염 환자의 장 세포는 물리적 자극에 정반대로 반응했다. 건강한 정상 세포는 '소화액 흐름'이라는 물리적 자극에 매우 취약했다. 자극에 노출된 지 32시간이 지나자 70% 이상의 세포가 죽었고, 새로운 세포가 만들어지는 증식률도 5.5%에서 2.3% 이하로 뚝 떨어졌다. 반면 궤양성 대장염 환자의 세포는 같은 자극에 오히려 강한 내성을 보이며 비정상적으로 증식했다. 조직 두께는 2.13배 두꺼워졌고, 장을 딱딱하게 굳히는 흉터 단백질(콜라겐 등)도 최대 2.46배나 더 많이 만들어냈다. 염증으로 변질된 세포는 물리적 자극을 '성장 신호'로 받아들여 장을 점점 더 굳게 만들었다.
연구팀은 정상 세포가 손상된 원인도 추가로 분석했다. 소화액 흐름이 가해지면 조직을 분해하는 특정 효소가 과도하게 활성화되면서 세포가 스스로 무너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장 점막 보호막이 온전히 유지된 상태에서는 동일한 물리적 자극을 가해도 내부 세포에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즉, 염증으로 '장 점막'이 한번 손상되면 평소 아무렇지 않던 소화액의 흐름이나 장의 움직임이 세포를 직접 파괴하고 장을 굳게 만드는 방아쇠로 돌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처럼 물리적 자극에 의해 변질된 세포 상태를 '기계적 적응 상태'라고 명명하며, 이것이 일시적인 변화가 아니라 장기적으로 장 전체를 굳게 만드는 씨앗처럼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장 섬유화를 막으려면 염증 치료만으로는 부족하며, 손상된 장 점막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것이 핵심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연구를 이끈 김현중 교수는 "장 섬유화는 염증의 결과만이 아니며, 장의 물리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섬유화의 절반만 보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장 점막 장벽을 회복하고 유지하는 것이 섬유화 예방의 핵심 전략이 될 수 있으며, 물리적 힘을 감지하는 신호 경로가 새로운 약물 개발의 표적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