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나 추락 후 팔에 힘이 잘 들어가지 않거나 발목이 아래로 처지는 듯한 증상이 나타나도 초기에는 단순 통증이나 일시적인 불편감으로 여기고 넘기기 쉽다. 그러나 이는 말초신경이 손상되었다는 신호일 수 있다. 초기에는 증상이 가벼워 보여도 실제 손상 정도는 훨씬 심각한 경우가 많다.
문제는 시간이다. 말초신경은 중추신경과 달리 재생 능력이 있어 골든타임 안에 정확한 진단과 치료를 받으면 회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재생 속도가 하루 약 1~2mm에 불과한 만큼, 신경 공급이 끊긴 근육은 빠르게 위축되고 일정 시점이 지나면 수술로 신경을 복원해도 기능 회복이 어려워진다. 외상성 말초신경 손상의 종류와 증상, 진단·치료 기준, 재활의 역할까지 신경외과 양진서 교수(한림대학교 춘천성심병원)와 함께 자세히 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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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사고·추락·압박... 외상성 말초신경 손상이란
우리 몸의 신경계는 뇌와 척수로 이루어진 중추신경계와, 척수에서 뻗어 나와 온몸 구석구석으로 이어지는 말초신경계로 나뉜다. 말초신경은 중추신경계의 신호를 근육에 전달해 움직임을 일으키고, 피부 감각을 뇌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외상성 말초신경 손상은 이 전달 체계가 외부 충격으로 손상되는 질환이다.
발생 원인은 다양하다. 양진서 교수는 "교통사고에서 어깨가 땅에 강하게 부딪히거나 팔이 과도하게 당겨질 때 팔 전체를 지배하는 상완신경총이 손상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밖에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서 신체 일부가 꺾이거나 눌리는 경우, 유리 파편이나 칼날에 베이면서 신경이 직접 절단되는 경우, 뼈가 부러지거나 어긋나면서 주변 신경이 함께 당겨지는 경우도 있다. 수술 후 장시간 같은 자세로 누워 있거나 깁스가 너무 조이는 환경에서도 말초신경이 눌려 손상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팔이 안 올라가고 발이 처진다... 부위별 신경 손상 신호
말초신경 손상은 어느 신경이, 어느 부위에서 손상되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증상이 나타난다. 팔과 어깨를 지배하는 상완신경총은 목뼈 5번부터 흉추 1번 사이에서 나오는 여러 신경 뿌리들이 합쳐져 만들어진 복잡한 신경 네트워크다.
양진서 교수는 "위쪽 묶음이 손상되면 어깨를 옆으로 들어 올리지 못하고 팔꿈치를 굽혀 물건을 드는 동작이 어려워지고, 아래쪽 묶음이 손상되면 손 안쪽의 작은 근육들이 마비되어 손가락을 섬세하게 움직이기 힘들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손이 갈퀴처럼 변형되기도 한다"라고 설명했다. 가운데 묶음이 손상되면 팔꿈치를 펴는 힘, 손목을 위로 젖히는 힘, 손가락을 펴는 힘이 주로 약해지며, 단독 손상보다는 위·아래쪽 묶음 손상과 함께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엉덩이와 다리는 좌골신경과 비골신경 손상이 대표적이다. 좌골신경은 우리 몸에서 가장 굵고 긴 신경으로, 엉덩이를 지나 허벅지 뒤쪽을 따라 내려가다 무릎 뒤쪽에서 두 갈래로 나뉜다. 이 신경이 손상되면 무릎 굽히기가 어려워지고 발목을 위아래로 움직이는 것이 모두 힘들어지며, 다리 전체에 저림과 감각 소실이 나타난다.
비골신경은 무릎 바깥쪽을 빙 돌아가는 구조여서 외부 충격에 특히 취약하다. 이 신경이 손상되면 발목을 위로 들어 올리지 못해 발이 아래로 처지는 '족하수'가 나타나고, 걸을 때 발끝이 땅에 끌리게 된다. 수술 중 부적절한 체위로 오래 누워 있어도 손상될 수 있어 의료 현장에서도 각별히 주의해야 하는 신경이다.
자연 회복될까, 수술이 필요할까... "신경 손상 정도가 기준"
말초신경 손상은 겉으로 비슷해 보여도 신경 내부가 얼마나 손상되었느냐에 따라 치료 방향과 예후가 크게 달라진다. 1단계인 신경 기능 마비는 신경 자체는 끊어지지 않고 전기 신호 전달만 일시적으로 차단된 상태로, 대부분 수 주 이내에 자연 회복된다. 2단계인 축삭 손상은 신경 내부의 신호 전달 통로는 끊어졌지만 신경을 감싸는 바깥 껍질이 보존된 상태다. 회복이 가능하지만 신경은 하루 1~2mm씩 천천히 재생되기 때문에 완전한 회복까지 수개월에서 1년 이상 걸릴 수 있다. 3단계인 신경 완전 절단은 신경 자체가 완전히 끊어진 상태로, 수술적 봉합이나 신경 이식 없이는 자연 회복을 기대하기 어렵다.
양진서 교수는 "말초신경 손상은 초기 증상만으로 손상 정도를 판단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만큼, 손상의 종류와 외상력을 함께 고려한 정확한 평가를 바탕으로 치료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했다. 자연 회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보존적 치료를 먼저 시행하며, 이 기간에는 보조기 착용으로 기능적 자세를 유지하고 물리치료와 수동적 관절 운동으로 관절 구축과 근육 위축을 최소화한다. 회복 여부는 3~6개월 간격으로 신경 생리 검사를 시행해 확인한다.
외상으로 신경이 완전히 절단되었거나 골조각·혈종이 신경을 압박해 자연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빠른 수술이 필요하다. 수술 방법으로는 절단된 신경 끝을 직접 연결하는 신경 봉합술, 손상 범위가 클 때 다른 부위 신경을 채취해 이식하는 신경 이식술 등이 있다.
양 교수는 "말초신경은 손상 후 매우 느린 속도로 재생되기 때문에, 신경이 근육과 오래 단절되면 근육이 위축되고, 이후 신경을 연결해도 기능 회복이 어려워진다"라며 "6개월 기다려 보자는 막연한 접근보다 손상 유형에 맞는 체계적인 치료 계획이 반드시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수술 후 재활은 마라톤... 꾸준함이 회복의 질을 결정한다
수술 후 재활은 단기간에 끝나지 않는다. 수술로 신경을 연결했다고 바로 기능이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이후에도 최소 12개월 이상의 꾸준한 재활이 필수다. 수술 직후 3개월까지는 봉합 부위를 안정화하고, 보조기 착용과 수동적 관절 운동, 신경근육 전기자극 치료로 근육이 움직임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한다. 3~6개월 이후에는 신경 재생이 진행되면서 미약한 근육 수축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이 시기부터 능동적 근력 운동과 감각 재교육 훈련을 단계적으로 시작한다. 6개월 이후에는 일상생활 복귀 훈련과 직업재활을 지속한다.
회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는 나이, 손상 부위와 목표 근육까지의 거리, 손상 정도, 수술 시기, 재활의 꾸준함 등이 있다. 이 중 재활의 꾸준함이 특히 중요하다. 보조기 없이 손목이나 발목을 방치하면 관절이 굳어 신경이 회복되어도 움직이기 어려워질 수 있다. 마비가 생긴 부위에서 전기가 흐르는 느낌이 시작한다면 신경 재생이 진행 중이라는 신호이므로, 이 시기에 재활 강도를 적절히 높이는 것이 좋다.
양진서 교수는 "말초신경 손상의 골든타임은 다친 직후부터다"라며 "이 시기를 놓치지 않으려면 손상 이후 마비나 통증이 심하거나 증상이 지속될 때 즉시 신경외과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진단과 치료 계획을 세워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적절한 시기에 이루어진 진단과 치료가 환자의 기능 회복과 삶의 질을 크게 좌우할 수 있다.